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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책 추천

그의 슬픔과 기쁨

 

그의 슬픔과 기쁨

정혜윤

후마니타스 2014.4

 

이 책의 출간 소식은 트위터를 통해서였다. 쌍차분들의 트윗과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짧은 감상평과 리뷰가 간간히 올라왔다.

 

2012년에는 『의자놀이가 나왔었다. 거기선 옥쇄파업 전후를 살펴보며 쌍차사태가 어디서 시작해서 어떤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지 사실 중심으로 기술되었다면, 이 책은 그 한가운데 있던 쌍차 노동자들의 삶과 개인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나도 그들의 "선택"과 감당해온 몇년이라는 길다면 긴 그 "시간"이 궁금했었다. 바로 그런 부분들이 담겨있는 책이다.

 

 

심보선시인은 프레시안에 '쌍차'의 그들은'투사'였을까? 그녀가 26명의 아저씨를 만난 이유(2014-05-16) 라는 제목으로 서평을 기고했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부분이 나온다.

 

나는 그의 목소리들, 그의 삶 이야기들을 들으며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선험적으로 가정해온 노동자 계급의식이란 단지 사회적 구조와 정치적 상황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평범한 슬픔과 기쁨들이 뒤섞이는 삶의 연금술 속에서 탄생하는 인간성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그의 슬픔과 기쁨>을 쓴 정혜윤을 저자라고 부르는 게 망설여진다. 그녀는 스물여섯 명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들의 이야기를 꼼꼼히 받아 적었다. 그녀를 르포 작가라 불러야 할까, 구술기록가라 불러야할까?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의 장면이 떠오른다. 나와 정혜윤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공농성 중인 송전탑 옆에서 진행된 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집회 도중 농성 노동자인 최병승 조합원이 송전탑 위에서 연설을 했다. 그때 정혜윤은 송전탑 아래로 가더니 한 손으로 마이크를 높이 올려 들고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연설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번개 파마머리와 치켜든 마이크가 만든 실루엣을 보고 나는 마치 "쭈그려 앉은 자유의 여신상" 같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더 재밌는 사실이 숨어 있다. 녹음을 잘 하자면 소리가 나오는 앰프 앞으로 녹음기를 들고 가는 것이 맞다. 그런데 그녀는 왜 굳이 송전탑 아래로 가서 연설 내내 불편한 자세로 녹음을 했던 것일까? 베테랑 라디오 PD 치고는 너무 아마추어스럽지 않은가? 이유는 단순하다. 그녀는 사람에게, 그 목소리의 주인에게 가까이 가고 싶었던 것이다. 웅변적인 연설조차도 정혜윤에게는 한 사람의 이야기였기에 그녀는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것이다. 마치 대화를 하듯이 말이다. 정혜윤은 똑같은 대화의 방식으로 스물여섯명의 이야기를 듣고 옮겨 적어 이 책을 썼다.  

 

 

"저는 이렇게 하는 이유가, 조명이 꺼지지 않아서예요. 그 빛이 밖에서 오는지 안에서 오는지 모르겠어요. 빛이 안 꺼져서 해요. 빛이 꺼지면 저도 어딘가 도망가겠지만 빛이 안 꺼져서 도망 못가요."(281쪽)

나는 그가 희망이라고 말하지 않고 조명이라고 말한 것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 빛이 밖에서 오는지 안에서 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도 가슴에 와 닿는다. 그의 말대로 그 빛은 꺼지지 않았다. 나는 생각한다. 그 희미한 빛 아래서 펼쳐진 무대를 지켜야 한다. 그 무대가 아니라면 우리는 암흑 속에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짐승에 불과할 것이다. 쓰러져도 그 무대 위에서, 일어나도 그 무대 위에서, 받쳐주는 손이 있고 일으켜 주는 손이 있는 그 무대 위에서, 오로지 그 무대 위에서 우리는 우리가 끝내 인간임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천여 명의 삶을 다 들여다볼 수 있는건 아니지만, 책에서 만난 스물 여섯 명의 말을 읽는(듣는) 가운데 그 선택이 이해가 되었고... 마음이 아프기도 짠하기도 또 웃음이 나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자신의 삶에 대해 비슷했던, 열심히 살고자 했던 그들의 태도였다. 다른 삶을 살다가 쌍차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후 그래, 열심히 일하고 가족들과 사랑하며 살자 했던 태도.

 

그리고 경제불황으로 인한 인원감축에 적용되는 잣대라는 것이 참 부질없는 기준이고, 어디서 일하건 우리도 그런 기준으로 평가되고 감축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쌍차의 문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함께 보였다.

 

 

책에서도 언급되는데, "미디어오늘"의 지난 기사를 함께 보는 것도 좋겠다.

쌍용차 노동자 “정치가 희망으로 고문했던 5년” (미디어오늘, 2012-12-08)

 

 

국정조사는 아직도 미뤄지고 있다.